‘기싱의 고백’이란 책 제목을 난 작년에 읽은 ‘카프카의 서재’란 책과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란 책에서 봤다. 어떤 책 이길래 이렇게들 거론하는 건지 궁금증이 더했다.
거기다 인터넷 서점에선 다 절판된 책이었다. 그래서 중고서점으로 뒤졌더니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고 난 다행히 싸게 파는 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책 상태가 특급으로 최상의 상태라더니 포장을 허술하게 해서 한쪽 모서리가 찌그러져 도착했다. 중고서점 판매자의 무신경이 책들에게 이리 고통을 주는구나 싶은 게 나까지도 맘이 아팠다.
책 서문에 저자가 ‘헨리 라이크로프트’란 인물이 사망하자 그의 원고를 정리하다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고 나온다. 그래서 난 당연히 조지 기싱이란 인물이 다른 사람의 원고로 책을 냈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본인이 가상의 인물로 대변해서 쓴, 소설과 수필의 중간쯤 되는 책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의 주인공은 젊어 가난한 작가였다. 호구지책으로 글을 썼고 그도 안 될 땐 노동을 해서 끼니를 때웠다. 하지만 그는 주머니 속의 몇 푼 남은 돈으로 배를 채우지 않고 맘에 두었던 중고 도서를 사기도 한다. 한번은 양이 많고 무거운 책들을 싸게 사서 직접 집으로 옮길 때 잠깐 땀을 식히며 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의 책사랑은 남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인 것 같다. 자신이 소장한 책들을 냄새로 다 구분이 가능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 지인의 사망과 함께 연금을 받게 되어 영국 시골로 이사해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이 그 곳에서 4계절을 보내며 기록한 생활 내용이다.
날씨가 좋고 건강이 괜찮을 땐 항상 산책을 즐긴다. 그는 식물들의 학명만 알아야 되는 게 아닌 속명까지도 알아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조밥나물의 종류에 대해 연구를 한다 했다. 길가나 화단에 핀 꽃들만 보면 달려가 구경하는 난 그 이름조차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에 왠지 마음이 찔린다.
그는 자연 외에도 역사, 경제, 종교 등 다방면에서 의견들을 나열하고 있다. 특히 그는 영국의 군주제도를 옹호하고 공화정치나 기계문명에 대해 비관적인 의견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얘기들은 곳곳에서 나의 독서 흐름을 깨기도 하고 의식을 흐릿하게 하기도 했다.
힘든 삶을 경험한 그가 말년에 돈 걱정 안하고 사는 것에 그는 몇 번이나 감사와 평화의 말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제 자기는 삶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했다. 쓸데없는 지식을 기억 속에 저장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돈키호테’나 한 번 더 읽어 볼 것이란다.
픽션이긴 하겠지만 그의 여유로운 목소리로 읊어내는 삶의 모습이 부럽기 그지없다. 나도 어디 산속이나 들어가 자연과 고요를 즐기고 독서를 하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