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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게임

바라이로 2014. 10. 11. 14:06
유년의 뜰 유년의 뜰
오정희 | 문학과지성사 | 199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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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기형아를 출산하고 정신이상이 되자 아버지가 정신병동으로 강제로 보내버리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오빠는 어느 날 훌쩍 집을 나가버리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아버지는 중증의 당뇨병을 앓고 있고, 딸은 빈혈증이 심한 듯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큰 딸에게 렌즈의 관리법이나 전기세가 많이 나왔느니 하는 잔소리를 계속해대고, 딸은 별 군소리 없이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있다.

이렇듯 뭔가 사연이 있는 가족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부녀의 저녁 풍경은 딸이 생선을 발라주는 저녁상에서 또는 화투치기라는 놀이를 통해 오히려 평범하면서 다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소설의 중간 중간 어머니에 관한 회상 장면에서, 그녀의 내면에 슬픈 뭔가가 응어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쌓이고 있지만 이를 표출하지 못함으로써 스트레스는 더해가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동네 근처 소년원의 아이들이 줄지어 가는 행렬을 보며, 한없이 돌아가는 지옥의 연자맷돌과 구슬픈 휘파람 소리를 연상하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처지와도 같음을 인식하지만 바로 본능적인 수치심으로 그들을 외면한다.

그리고 밥상에 오빠의 수저를 올렸다 치우며, 느닷없이 녹음된 오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와 화투를 치다가 문득 오빠의 부재를 떠올린다.

 

그녀에게 집이란 어쩌면 무거운 짐이면서 당장 탈출해야 할 침몰하는 배와도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리움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그 무거운 짐을 나눠 질 오빠는 기다려도 오지 않고 정신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한 엄마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꿈속에서의 열아홉인 그애와 죽은 어머니는 마른 꽃냄새로 그녀에게 찾아온다. 이 향기롭지만은 않은 마른 꽃냄새가 그녀에게는 그리움에 대한 안정제 역할과 동시에 정신착란 같은 걸 일으키기도 하나보다.

밤중에 느닷없이 밖으로 나가 남자를 만나 창녀 취급을 받아도 그저 웃음만 짓는 그녀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